드라이플라워/ 박성민
여기서 살아나간 향기는 없었다/말라붙은 웃음만 빛깔로 남은 병실/눈뜬 채 잠이 든 그녀/눈꺼풀 떠는 창문//옆으로 돌아누워 거울을 마주 보면/텅 빈 뼛속에서 한 묶음 새가 운다/허공에 부리를 묻는다/물 한 모금 없는 새장//안개가 무성하던 계절은 멈춰 섰다/한 알의 하루를 삼키는 저물녘엔/온몸이 바스라진다/잇몸으로 뜨는 달「어쩌자고 그대는 먼 곳에 떠 있는가」 (시인동네, 2020)박성민 시인은 전남 목포 출생으로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쌍봉낙타의 꿈’, ‘숲을 金으로 읽다’, ‘어쩌자고 그대는 먼 곳에 떠 있는가’등이 있다. 또 다른 목소리의 발현에 전념하고 있는 시인이다. 자아와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에 매진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키고, 미학적 자질을 견인해 문학적 성취에 이르고자 전력투구 중이다.‘드라이플라워’도 그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살아나간 향기는 없었다, 라는 첫 대목이 명치끝을 저리게 한다. 향기는 한 생명이다. 오래도록 이 땅을 밟고 살아가야할 소중한 목숨이다. 그렇지만 시의 화자는 살아나간 이가 없었다고 단호하게 천명한다. 이것은 곧 드라이플라워의 이미지다. 말라붙은 웃음만 빛깔로 남은 병실에서 눈뜬 채 잠이 든 그녀가 있고 그 순간 창문은 눈꺼풀을 떤다. 창문은 그녀에게는 희망이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움직이는 존재가 되고 있다. 그렇기에 눈꺼풀이 떤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자아와 세계가 한 호흡을 이루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옆으로 돌아누워 거울을 마주 보면 텅 빈 뼛속에서 한 묶음 새가 울고 있다는 표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텅 빈 뼛속에서라는 구절을 통해 그녀가 지금 얼마나 병약한가를 여실히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허공에 부리를 묻는다고 했을 것이다. 물 한 모금 없는 새장이기에. 안개가 무성하던 계절은 멈춰 섰고, 한 알의 하루를 삼키는 저물녘에는 온몸이 바스라진다. 하여 참으로 기막힌 표현인 달이 잇몸으로 뜬다, 라는 결구에 이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그는 ‘숲을 金으로 읽다’에서 자연의 비의 앞에 선 한 자아의 심경을 진솔하게 진술하고 있다. 난시의 가을인가, 도리마을 은행 숲에 버려진 잎들끼리 껴안고 뒹구는 땅 눈부신 폐허의 풍경이 금빛으로 타오른다, 라고 시적 정황을 적실하게 형상화한다. 폐허이지만 폐허의 풍경은 금빛이고 그것은 타오르는 금빛이어서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눈부시게 한다. 너 떠나자 가을이다, 어깨를 움츠린 가을이라는 둘째 수 초장은 의미심장하다. 너는 누구인가 쉽게 물을 수가 없다. 다만 네가 떠나고 나자 가을은 찾아왔고, 그로 말미암아 가을은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 그리고 우듬지까지 밀어올린 눈물의 뿌리들이 써놓고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쌓여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하여 화자는 보풀 이는 너의 손등을 가만히 만져본다. 끝으로 추워지는 영혼마다 어깨들 감싸주듯 맨살이 맨살을 더듬는 은행 숲이 빛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숲을 금(金)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정황을 환기시키고 있다. 숲이라는 글자 모양에서 금을 읽어낸 혜안은 시인으로 하여금 부단히 시를 쓰게 하는 영감이자 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아와 세계를 민감하게 읽고 받아들이는 예지가 시인에게 있기 때문에 미적 자질을 육화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터다. 이러한 일은 시인에게 주어진 몫이자 행운이다. 시인이 왜 쓰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지 ‘드라이플라워’나 ‘숲을 金으로 읽다’를 통해 우리는 여실히 느끼게 된다. 그것으로 족한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