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진성초 ‘마음건강 인성공예교실’ 큰 호응

경산 진성초등학교가 학생 마음건강을 위해 운영하는 학년별 인성 공예 교실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진성초에 따르면 마음건강 인성 공예교실은 오는 11일까지 학년별로 열린다. 인성교실은 방과 후 강좌 중 학생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공예 강좌를 관련 교과(미술 등)와 연계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학년별로 2차례씩 총 4시간을 운영한다.마음건강 인성 공예교실 작품은 담임교사와 사전협의를 통해 사전에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 학년에 맞게 구성했다.1~2학년은 하트 연필꽂이와 석고방향제, 3~4학년 팝아트·미니수납함 만들기, 5~6학년 좋아하는 연예인 그리기·캘리엽서 등이다.학생들은 다양한 재료로 서로 협력해 작품을 완성하며 소통의 기회를 갖는 등 공동체의 중요성을 키워나가고 있다.이병도 교장은 “학생들의 마음 건강증진과 지원을 위해 지속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겠다”며 “이번 공예작품은 학교 작품전시회에 다 함께 감상하도록 전시할 계획이”고 말했다. 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제39회 대구미술·공예·서예·문인화대전 대상 손영미·안순국씨

제39회 대구미술·공예·서예·문인화대전에서 공예와 서예·문인화 부문에 손영미·안순국씨가 각각 대상을 차지했다. 미술 부문 대상은 ‘적격작품 없음’으로 결정돼 선정하지 못했다.이번 대전에는 총 1천300점이 출품돼 794점의 입상자가 나왔다. 입상자 중 입선 507점, 특선 262점, 우수 16점, 최우수 7점, 대상 2점이 수상하게 됐다.손씨는 작품 ‘천명’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천명은 세라믹 재료의 특수성을 살려 조형성과 창의성이 돋보인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그는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도자기를 접한 지 5년 만에 이런 큰 상을 받아 매우 고맙다”며 “천명은 위암으로 하늘나라에 간 언니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했는데 이 기쁨을 언니와 함께 나눌 수 없어 안타깝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안씨는 ‘청매’ 작품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청매’는 기품이 넘치고 청매가 지닌 고결한 마음을 의미하듯 그 뜻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그는 “입문 10여 년만에 대상의 영광을 안아 기쁘며 이를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이점찬 조직위원장은 “미술대전 부문이 지난해에 비해 출품작이 적어 대상을 내지 못해 아쉽다”면서도 “공예대전에 상대적으로 출품작이 100여점 정도 늘어나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 본 대전을 통해 신진작가 발굴과 미술창작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이번 공모전의 시상식은 오는 26일 오후 3시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공모전 전시는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전관에서 진행된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미술관 나온 공예 아트

10일 오후 영남대 경산캠퍼스 정문에 이 학교 미술학부 트랜스 아트 전공 학생들이 공예작품을 설치해 학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이무열 기자 lmy4532@idaegu.com

제6회 대구 국제 차·공예 박람회 가보니

“전통을 살리면서 생활 속에서는 실용적으로 사용 가능한 제품들을 만들고 있습니다.”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엑스코에서 개최된 ‘제6회 대구 국제 차·공예 박람회’에 참가한 박영숙 천년의 빛깔 쪽빛 노을 대표가 여성 개량한복의 우수성을 설명했다.이번 박람회에는 130개 업체가 150개 부스를 마련했다.경남 하동군, 전남 보성군, 전북 정읍시 등 전국에서 직접 만든 햇차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물론 공예 관련 조합들도 참여했다.차, 차 가공품, 차 도구, 도자기, 섬유공예, 목공예, 금속공예 등 다양한 제품이 전시됐다.부스마다 블랙 티, 허니 부시, 레몬차 등 수많은 차 종류를 선보였고 관람객에게 직접 시음해볼 기회를 제공했다.도자기로 만든 그릇, 접시, 찻잔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생동감을 더했고 코끼리, 고양이, 닭, 염소 등 장식품들도 각기 제멋을 뽐냈다.목걸이, 팔찌, 머리핀 등은 압화 공예를 통해 화려함을 연출했다. 압화는 생화나 나뭇잎의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 누르고 건조해 원형을 유지시키는 방식을 뜻한다.국내 나무를 활용한 가구들도 전시됐다.이민호 가야공방 대표는 “제품들은 99% 우리나라 나무들을 이용해 제작하고 있다”며 “소나무로 만든 차 보관함, 팽나무나 느티나무로 만든 입식 차상 및 도마 등 제품 종류가 다양하다”고 전했다.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붐빈 곳은 옻칠한 생품용품과 유기 제품 부스로 오동나무에 천연 옻을 칠해 방수성이 우수하고 곰팡이나 환경호르몬, 중금속 성분이 없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또 유기 제품을 판매하는 부스에서는 수십여 개의 그릇들이 번쩍이며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김춘옥(58·여·달서구 월성동)씨는 “전통 방식으로 만든 한국 제품을 좋아해 관람하러 왔는데 종류가 다양해 볼거리가 많았다”며 “집에 제사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기그릇에 관심을 두게 됐고 우수함이 느껴져 구매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이 밖에도 ‘오늘의 차’ 부대행사도 진행됐다. 말차, 녹차, 죽통 홍차, 감잎차 등 시간대별로 다양한 차와 다식을 즐길 수 있는 장소도 마련됐다.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흙으로 만든 형태서 또 다른 소재로 전환”

김병문(38) 작가의 미술 인생은 간절함과 치열함이 공존했다. 조금은 늦은 시작과 남들과는 다른 눈, 6년여의 일본 유학 생활 등 치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일본 유학 생활을 끝내고 경산에 다시 돌아온 지 어언 2년 그는 한국의 주조 기술을 되살리고 학술적으로 남기고 싶다는 목표를 전했다.◆간절함으로 시작한 미술그가 미술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다. 미술을 했던 누나의 영향이 컸다.하지만 미술을 하고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김 작가는 “부모님이 미술을 하는 누나도 탐탁지 않게 생각하셔서 차마 하고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며 “누나가 다니던 학원을 갔다가 나도 모르게 하고 싶다는 눈빛을 미술학원 선생님에게 보낸 거 같다.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권유해주셔서 미술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남들보다는 조금 늦은 시작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미술을 시작했지만 또 다른 시련이 그에게 닥쳤다. 바로 색약(색을 분별하는 능력이 정상보다 부족한 증상).“처음에는 전혀 몰랐다. 입시 미술을 시작하고 탁색계통으로 가면서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그렇게 회화가 아닌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그게 공예였다. 유독 손으로 작품을 만들기 좋아하던 김 작가는 대구대학교 공예과에 입학했다.그는 공예과 선택에 대해 “디자인 계열과 공예과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손으로 만지는 게 더 좋았다. 눈에 대한 약점 역시 공예과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섬유, 금속, 도자, 목칠 4가지 중 금속을 선택한 이유 역시 도자기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가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금속공예는 처음 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또 다른 소재로 전환된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금속 표면 질감이나 착색 후의 광택 등이 도자기에서 표현할 수 없는 빛깔들이었다. ‘이거다’라고 생각했다.”◆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일본 유학생활일본과의 인연은 동 대학원을 입학 하면서 시작됐다. 석사 1년차가 끝날 때쯤 일본 동경예술대학 금속공예과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석사과정 중이었지만 학부생들과 함께 공부해야 했다. 그는 “정말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학부생들과 함께 공부를 했다. 한국과는 수업과정 자체가 달랐다”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보내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같다”고 했다.그는 그 시간을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고 했다. 1년의 유학 생활 후 한국에 돌아와 대구대 석사과정을 마쳤다.그는 일본에서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확고한 이유가 있었다.그는 “주조의 역사는 우리나라가 앞선다. 하지만 지금 현존해있는 학술자료 유물은 일본이 매우 잘 정리가 돼 있다. 우리나라는 정리가 안 돼 있고 학술적 자료도 없었다”며 “일본 주조 방식도 결국은 우리나라에서 온 방식인데 이거라도 배워서 학술적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그렇게 일본으로 다시 갔다. 동경예술대학 금속공예과 석사 시험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어학이 큰 걸림돌이었다. 실기시험은 자신이 있었지만 문제는 필기였다. 6개월간 어학 공부에 매진했다. 예상 문제를 달달 외웠다.합격은 기대하지 않았다. 석사 시험에 응시한 사람 중 김 작가는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합격이었다. 비결에 대해 그는 “교수님께서 전공실기 점수가 가장 높았다고 이야기했다. 저의 간절함이 통했던 것 같다”고 했다.그는 일본 유학시절 스스로 금속공예에 완전 미쳐 있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가서 먼가 해야 되는 데 그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석사와 박사 총 6년6개월의 시간의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했다. 향수병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그는 “주말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평일에는 오후 6시부터 12시까지 일을 했다”며 “생활비, 재료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당시 힘든 시간은 그의 작품에 투영됐다. 그는 “예전에 있었던 보금자리, 고향의 냄새, 소리 등 순간에 떠오르는 것들을 작품으로 표현하려고 했다”며 “초기 작품들 대부분 일본 유학시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그의 초기 작품은 대부분 고향에 대한 추억과 향수가 작품에 투영된 순수작품이다. 하지만 최근 작품들은 시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쓰임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지금 현재 대구대학교 금속공예과에서 후학양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일본에서 10여 회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진행한 그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 진토 주조기법을 일본에서 배워왔다. 진토에 대해서 실험중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없어졌던 기법을 다시 되살리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에서 개인전도 계획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작품으로 시민들과 소통으로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