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 추진 1년 늦어진다

경북도가 2021년 등재를 목표로 추진해온 가야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가 한해 더 늦어지게 됐다.당초 세계유산등재를 추진했던 고령(지산동), 경남 김해(대성동)·함안(말이산) 고분군에서 경남 고성·창녕·합천, 전북 남원 고분군이 보태지면서 세계유산등재 신청을 위한 요건 충족이 더 필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10일 경북도에 따르면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위원회(이하 분과위)는 지난 7월30일 가야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대상 최종심의에서 가야 고분군을 2021년 세계유산 최종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하지 않았다.이유는 지난 3월21일 등재신청 후보를 위한 재심의에서 조건부로 가결한 3가지 조건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판단, 후보자격을 보류한 것이다.당시 분과위는 △가야 고분군의 역사성을 보완할 수 있는 연구팀 보강과 관련 전문가 참여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고분군과의 비교연구 보강 △신청 대상 고분군 전체를 관통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 보강 등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이에 대해 가야 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위원장 이철우 경북도지사·이하 추진위)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연구팀을 당초 4명에서 5명으로 1명 더 늘리고 지난 3월 분과위 재심의 때 제시된 조건을 충족하려고 노력했지만 신청대상 고분군 확대 등으로 4개월 동안 이를 다 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이 관계자는 이어 “다음달 연구진을 한 명 더 채용해 연구팀을 보강하는 등 올 연말까지 요건을 보완, 내년 5월 문화재청 소위원회 서류심사 및 보완신청서를 제출하겠다”고 덧붙였다.분과위는 내년 7월 세계유산 최종 등재신청 대성 선정을 위한 심의를 할 계획이다. 만약 이때 가야 고분군의 세계유산등재 신청 대상으로 최종 선정되면 2021년 현장실사를 거쳐 2022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가야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2013년 문화재청의 잠정목록으로 선정된 이후 2017년 등재추진단이 발족했다. 이후 지난해 5월 △고성 송학동 △창년 교동·송현동 △합천 옥전 △남원 유곡리·두곡리 고분군 등 유산범위 4곳이 추가됐다.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고령 세계유산 최종등재 신청예정인 지산동 고분군 정비, 관람객 편의 제공

고령군은 세계유산 최종등재 신청대상, 선정 예정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 정비공사를 완료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정비공사는 2억5천만 원을 들여 봉분 11기, 관람로 864m, 잔디식재 2천430㎡, 배수로 244m 등을 정비했다. 특히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편의점에서 지산동 고분군 446호분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게 계단를 설치했으며, 또 대가야박물관 뒤편에서 고분군 관람로로 바로 진입할 수 있게 했다. 곽용환 군수는 “이번 공사로 총 230여 기의 고분군 정비에 이어, 관람객을 위한 안전 및 편의시설 정비, 관람로 조성, 조경식재, 사유지 매입, 분묘이장 등의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대가야 문화유산인 지산동 고분군을 널리 알리고, 2021년 세계유산에 최종등재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군은 향후 돌계단 구간(토제방울 출토 지역)을 자연친화적인 식생매트 등으로 교체해 편안하고 안전한 관람이 가능하게 정비할 예정이다. 김재호 기자 kjh35711@idaegu.com

구미시, 돌배나무 관광숲 조성 중 고분군 유물 훼손 알고도 숨겨

정부 공모사업을 진행하던 자치단체가 고대 고분군의 유물을 훼손하고도 이를 숨겨온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유물이 훼손된 곳은 돌배나무 특화 숲을 조성하고 있는 구미시 무을면 송삼리 일대다. 구미시는 산림청 공모사업에 선정돼 2016년부터 10년간 국·지방비 15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무을면 일대 460㏊에 돌배나무 관광 숲을 만들고 있다. 관광객 유치와 양봉업 육성 등 농가소득 증대를 위한 사업으로 현재 공정이 70% 진행된 상태다. 지역 문화재 관련자의 신고로 긴급 현장 조사에 나선 문화재청은 송삼리 고분군 주위에서 신라·고려·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훼손된 것을 확인했다. 문화재청은 송삼리와 무수리·무이리 등 7만여㎡를 고분군으로 보고 있다.이 일대는 2002년 구미시가 영남대 민족연구소에 용역을 맡겨 신라 시대 고분군으로 조사된 곳으로 구미시는 이번 돌배나무 관광숲 사업을 하면서 관련 부서 간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특화 숲 조성사업의 공사를 중단과 보전조치를 통보하고 위반 사실이 드러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구미시 산림과는 “사업추진 전에 문화예술과 협의 등 면밀한 검토를 하지 못했다”면서도 “공사 전 이미 도굴 때문에 훼손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해명했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경산시 ‘경산 임당동·조영동 고분군’ 종합정비 한다

경산시는 최근 시청 상황실에서 사적 제516호 ‘경산 임당동·조영동 고분군’ 정비복원을 위한 종합정비계획수립 용역 최종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용역 최종보고회는 경산의 고대국가 압독국 중심 유적인 ‘사적 제516호 경산 임당동·조영동 고분군’의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보존·관리와 활용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추진해 왔다. 용역을 맡은 신라문화유산연구원과 우리건축사사무소는 이날 최종보고회를 통해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에 대한 △고분군 학술조사계획 △사유지 매입계획 △교통 및 동선계획 △관리편의시설과 부대시설계획 △유적전시관 계획 △유적의 활용 계획 등 중장기적인 정비·활용 방안을 제안했다. 최종보고회에서 김세기 대구한의대학교 명예교수를 비롯한 전·현직 문화재 위원들은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은 다른 지역 고분군에서는 찾을 수 없는 풍부하고 독창적인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다”며 “유적에 대한 정비는 역사 공간 보존과 활용계획을 마련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최영조 경산시장은 “이번 종합정비계획수립 용역이 마무리되면, 문화재청과 협의해 유적을 체계적으로 정비복원을 하겠다”며 “유적전시관 건립을 포함한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지역의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대가야읍 병풍처럼 휘감은 왕의 고분들…백성들 사는 모습 굽어살피시네

고령군은 경북도의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경남도와 붙어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시와 붙어 있다. 서쪽에 있는 가야산에서 대가천과 안림천의 물길이 시작돼 주변에 비옥한 평야를 만들며 대가야읍에서 합쳐지고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수많은 둥근 곡선의 봉분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능선을 따라 천천히 산길을 오른다. 줄지어 늘어선 왕들의 무덤은 고령군 대가야읍을 병풍처럼 감싸며 내려다보고 있다. 1천500년 전인 5~6세기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의 봉분들. 사적 79호로 지정된 지산동고분군이다. 대가야고분의 특징 중 하나는 높은 산 위에 무덤을 축조한 것이다. 왜 능선의 정상부에 봉분을 두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산 돌출부에 흙을 높이 쌓아 올려 봉분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면, 무덤이 실제보다 더 크고 웅장하며 신성하게 보인다.살아있는 사람들의 시야에 항상 들어오는 곳, 그것도 높이 올려다보이는 위치에 있게 된다. 무덤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죽은 후에도 자신의 후손인 왕들이 백성들을 통치해 가는 모습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언제나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조상보다 더 위쪽에 묘지를 조성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달랐다. 권세가 강한 후대로 갈수록 무덤을 위쪽에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크고 작은 고분 수백 기가 남아있다. 해방 전부터 대부분 도굴되었으나, 그 후 발굴 조사하는 등 정비작업이 착실히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달 지산동고분군에서 국내 최초로 고대 건국신화가 새겨진 유물이 발견됐다고 해서 언론의 관심이 쏠렸다. 5세기 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름 5㎝의 토제 방울이 발굴조사 현장에서 나왔는데, 표면에 거북 등껍질 문양을 비롯해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이는 '구지가'로 알려진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된 ‘수로왕 건국설화’와 같다는 것이다. 삼국유사나 사기 등의 문헌에 기록된 것들이 유물에 투영된 최초의 사례라고 조사팀은 주장했다. 다양한 해석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돼 학계에서는 추가 연구가 진행돼야 그림의 실체가 명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토기와 투구지산동고분에서는 고령양식 또는 대가야 양식으로 독특한 토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신라계 토기와 대가야계 토기는 모양에서 차이가 난다. 가야토기는 부드럽고 우아해 보인다. 서기 300년대 무렵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토기는 500년대 중반경에는 남해안은 물론 마산, 창원에까지 퍼져 거의 가야지역 전체에 미친다. 이처럼 넓은 지역에서 대가야양식 토기가 발견되는 것은, 그만큼 대가야의 국력이 컸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철 생산도 대가야가 국력을 키우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가야의 고분에서는 고리칼, 쇠창, 쇠도끼, 화살촉 등 많은 무기가 나온다.이들은 전투에서 직접 사용되기도 했지만, 묻힌 사람이 살았을 때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대가야에서는 야구모자처럼 챙이 있는 투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투구의 정수리 부분에는 술같이 생긴 장식이나 깃털 모양의 장식을 달아 위용을 빛낼 수 있게 했다. 이 가운데 지산동고분에서 발견된 야구모자 모양 투구와 갑옷은 신라보다 가야지역과 일본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이 같은 유물을 통해 대가야와 일본의 문화교류가 활발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령군은 낙동강의 뱃길을 이용해 밖으로 쉽게 교통할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대가야는 각 지방으로 통하는 도로를 가지고 있었고, 강과 바다를 오가는 뱃길을 이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남해안에 도달하는 길은 낙동강을 통하여 지금의 김해 쪽으로 나아가거나, 또 하나는 합천, 진주를 거쳐 사천 앞바다로 나아가는 길 등이 있었다. 대가야는 이와 같은 길로 소나 말이 끄는 수레와 배를 이용하여 철과 곡물, 토기 등을 내보내고 생선과 조개, 소금 등을 들여올 수 있었다. ◆금관과 금동관대가야의 고분에서는 금관과 금동관도 여러 개 출토됐다. 대가야의 왕이 쓰던 관은 다른 나라의 관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신라의 관이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인데 비해 대가야의 관은 풀잎이나 꽃잎 모양이다.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국보 제138호 '전(傳) 고령금관 및 장신구 일괄'과 보물 제2018호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이다. 고령금관은 끝부분을 다듬어 풀꽃 모양 장식을 세우고, 양 옆에 뿔처럼 튀어나오게 만든 돌기를 달아 굽은 옥을 걸 수 있게 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보물 제2018호 고령 금동관은 고령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유물로서, 발굴 경위와 출토지가 확실하고 함께 출토된 유물에 의해 5세기 대가야 시대에 제작된 사실이 확인됐다.지난 2월 이 금동관은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가야가 각종 금속 제련 기술은 물론, 금속공예 기법에도 능해 고유한 기술과 예술문화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얇은 동판을 두드려 판을 만든 뒤 도금했는데, 일반적 금동관 형태인 출(出)자 형식과 다르게, 넓적한 판 위에 X자 문양을 점선으로 교차해 새긴 점이 특징이다. 가야시대 금동관은 출토 사례가 적어 희소가치가 있고,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단순하고 세련된 문양으로 인해 고유성이 강하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보물 지정에 때맞춰 최근 국립대구박물관은 이 금동관을 상설 전시한다고 발표했다.그동안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가야실)에서만 볼 수 있었으나, 보물지정을 기념해 대구박물관에서 전시하게 됐다. ◆44호분다시 새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중턱쯤 오르자, 다른 고분들보다 더욱 우뚝 솟아 보이는 봉분이 서 있다.지산리 44호분이다. 주산 구릉의 맨 꼭대기에서 열 지어 늘어선 5기의 대형 고분 중에서, 남쪽 아래쪽 경사면에 독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77년 발굴 조사된 이 고분은 3기의 대형 석실과 이를 둘러싸듯이 배치돼 축조된 32기의 소형 순장 돌 덧널이 들어 있었다. 유물은 대부분이 도굴되었지만, 남은 것으로 금귀걸이·금동그릇·은장식쇠창·야광조개국자 등이 나왔다. 특히 일본 오키나와(冲繩)에서만 생산되는 야광조개로 만든 국자 조각도 나왔다. 이는 대가야의 활발한 해외 교역 활동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다. 고분의 규모와 구조·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이 고분은 지금까지 발굴된 가야 고분 중 최고의 위계를 가진 왕릉으로 보고 있다. 이 고분의 특징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굴된 대형 순장묘였다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고대사에서 단편적으로 보였던 순장 기록에 대한 실체가 밝혀지게 됐다. 순장(殉葬)이란,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그를 위해 생전에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을 함께 매장하는 장례 행위를 말한다. 이는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삶을 계속한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의 관점에 따라, 이승에서의 생활을 저승에서도 그대로 누리라는 의미에서 행한 것이다. 특히 44호분에서는 30여 명 이상의 순장자가 묻혀 있어 당시 발굴에 참여했던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562년 신라 장군 이사부가 이끄는 군대의 공격이 있었다. 대가야는 이 전투에서 15세 소년 장수 사다함의 5천 명 선봉대의 기습공격을 당하며 멸망했다. 16대 520년간 지속했던 ‘대왕’의 나라 대가야는 500년대 국제정세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신라에 병합되고 말았다. 대가야를 정복한 신라는 대가야의 지배층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흩어져 살게 했다.가야금을 만든 우륵은 신라의 중원경(청주)으로 보내졌고, 신라의 대문장가인 강수(强首)와 명필 김생(金生)도 대가야의 후손들이지만, 고령이 아닌 다른 곳에서 활동하게 된 것이다.대가야 출신의 인물들은 인문과 예술로 신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지난달 21일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심의를 거쳐, 가야 고분군(고령 지산동고분군 외 6개)을 등재 신청 후보로 선정했다. 오는 7월 문화재위원회에서 등재 신청 대상으로 결정될 경우, 문화재청은 2020년 1월 세계유산센터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한다.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2021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이에 발맞춰 고령군에서는 오는 11일부터 14일까지 ‘고령 대가야체험축제’ 행사를 가진다.대가야 생활촌,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대가야읍 일원에서 4일간 개최된다. 이제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저 멀리 서쪽을 바라보니 미세먼지가 시야를 흐려 대가야 시조모인 정견모주가 살고 있는 가야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무덤을 뒤 돌아보았다.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를 느끼게 하는 지산동고분군이었다. (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북구청, 구암동 고분군 누리길 정기탐방 운영

대구 북구청이 오는 30일부터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전 10시 ‘해설이 있는 구암동 고분군 누리길 정기탐방’을 운영한다.탐방은 역사문화관광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으며, 사전 신청을 한 개인 및 단체 등 20명을 대상으로 한다.탐방대는 운암지 수변공원 입구 탐방안내소 앞을 시작으로 문화유산탐방해설사의 구암동고분군과 칠곡일대 문화 유산에 대한 해설을 들으며 누리길 1호분길, 팔거산성길 등을 돌아볼 예정이다.탐방 코스는 구암동 고분군 누리길 1.6㎞로 2시간이 소요된다.이번 달 신청은 26일 오후 6시까지 구암동 고분군・팔거산성 탐방안내소 및 청림문화유산연구소를 통해 하면 된다. 문의: 053-325-2344. 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잠정목록 신청서 제출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잠정목록 신청서가 세계유산센터에 제출됐다. 7일 경북도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과 김해·함안 말이산 고분군 외에 4개 고분군이 추가된 총 7개 가야고분군을 아우르는 ‘가야고분군’을 최근 새로운 세계유산 잠정 목록으로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했다.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과 김해·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2013년 12월 각각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록됐다.그러나 2017년 12월 세계유산 등재신청 후보 선정을 위한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유산 가치의 완성도를 위해 4개 가야고분군 추가가 권고됐다.추가된 가야고분군은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등이다. 가야고분군은 오는 3월 예정된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심의에서 후보로 선정되면 7월쯤 최종 등 등재 대상 선정을 거쳐 2020년 1월 세계유산센터에 최종 세계유산등재신청서가 제출된다.이후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지 실사를 거쳐 2021년 7월쯤 세계유산위원회의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다.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